청년은 다리를 늘어뜨린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. 창백한 불빛이 그 목줄기를 덤덤히 내려다본다. 갑갑하고, 싸늘한, 보존된 사체 같은 그의 욕실. 욕조에 받긴 물은 식은 지 오래고, 그것은 그의 비탄이 차분히 숙성되어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. 청년의 긴 팔이 욕조 팔걸이 위에 걸려있었다. 그의 손바닥엔 큼지막한 상흔이 자리하고 있다. 그와 마주할 적이...
“네가 내 목줄을 쥔 게 맞아.” 오이카와는 그렇게 말했다. 치졸하게 관계에 우열을 매긴 것은 오기에 가까운 자존심이었다. 그는 강력한 센티넬이었고, 원한다면 땅을 쪼갤 수도, 해일을 일으킬 수도, 그들이 들어있는 이 건물을 통째로 뽑아버릴 수도 있었지만, 그 모든 것은 그의 바람이 아니다. 그는 새까만 타이를 끄르고 단추를 뜯다시피 목덜미를 내보였다. “...
카게야마는 지친 몸을 소파에 기댔다. TV에선 때 아닌 흑백영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. 필름과 소리, 그 아래 깔린 복식이며 표정마저도 낡았다. 그는 말없이 화면을 바라본다. 색을 알 수 없는 연미복과 드레스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. 자연스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것들이 있다. 화가가 손으로 그린 포스터, 아침마다 극장 정문에 걸리던 알파벳, 멋들어...
오이카와는 옥상 난간에 기댄 채 손목시계를 확인했다. 묵색 가죽 위로 은회색의 금속 테두리가 날카롭게 빛을 쪼갰다. 소리도 없이 매끄럽게 돌아가는 초침. 시계는 막 21시 37분을 가리켰다. 오이카와는 인이어를 고쳐 끼웠다. 곧, 사신이 찾아온다. 지지직, 기계음 뒤로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. -오이카와 씨. “네네, 오이카와 씨입니다.” -대답은 한 ...
오이카와는 지친 몸을 끌고 부실 문을 열었다. 뒤에서 타박타박 따라붙는 발소리가 들린다. 문을 아예 닫아버릴까, 하다 아무리 그래도, 싶어 조금만 열어두었다. 그는 쓰러지듯 옆 라커에 머리를 박고, 제 이름표가 붙은 칸을 향해 손을 뻗었다. 그때였다. 아스라한 꽃향기가 코끝에 닿은 것은. 오이카와 토오루는 감이 좋은 편이었다. 라커를 여는 덜 자란 손과, ...
토비오 생일 합작 <우리토비오>에 참여했습니다. 멋진 연성으로 가득한 예쁜 합작 홈페이지는 이쪽이에요! : deartobio.kr 오이카와는 뭉클하면서도 낯선 기분으로 거리를 내다보았다. 18년 내내 살아온 동네였건만, 고작 일 년 새 거리엔 못 보던 간판들이 즐비하다. 카게야마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고기만두집이 사라진 걸 발견했을 땐 아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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